일본의 철도 도시락 '에키벤'
글 : 원수연
기차에서 파는 도시락을 먹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는가? 일본이라면 가능하다. 각 지역의 기차 역마다 파는 다양한 에키벤(역에서 파는 도시락)을 먹기 위해 기차에 오른다고 하니 도대체 에키벤이 얼마나 대단한지 궁금해진다. 철도여행과 에키벤을 소개하는 만화에 해마다 에키벤 경연 대회가 열리며 식도락 여행의 콘텐츠로 자리잡은 일본 주요 역의 맛깔스러운 에키벤을 만나보자.
1. 도야마역의 ‘미스노스시(송어초밥)’
둥근 나무 틀에 대나무 잎을 깔고 도야마산 흰쌀밥을 올린 다음 핑크색 송어를 빈틈없이 깔고 다시 대나무잎으로 감싸 뚜껑으로 단단히 눌러 만든 초밥이다. 전국구로 유명한 송어 초밥으로 절묘한 식초의 비율과 송어의 감칠맛, 게다가 격조 높은 용기는 고급스러움을 더 했다.
2. 하카타역의 ‘이카 산마이 에키벤’
하카타는 일본 후쿠오카에 위치해 있고 약 2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규슈 사가현의 특산품 오징어를 이용해 만든 에키벤은 다양한 오징어 요리를 가득 담아내었다. 자극적이지 않은 맛으로 특히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으며 규슈에서 매년 열리는 에키벤 그랑프리 3위를 달성했다.
3. 카레이가와역의 ‘카레이가와 백년의 이야기’
카레이가와역은 약 백 년 전 지어진 목조 건물로 옛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어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 곳이다. 이곳에서 유명한 에키벤은 몇 년간 규슈 에키벤 랭킹에서 독주를 하고 있는 ‘카레이가와 백년의 이야기’이다. 대나무로 만든 도시락 통 안에 고구마튀김, 고로케, 표고버섯, 죽순을 넣은 영양 밥으로 소박하지만 별미다. 관광열차 ‘하야토노카제’ 내부에서 금, 토, 일 100개 한정 판매를 하기 때문에 늦게 가면 절대 만날 수 없다.
4. 다케오 온천역의 ‘사가규 스키야키 에키벤’
사가규는 일본 농업협동조합의 엄격한 심사에서 최상위 등급으로 인정받은 소고기에만 붙여지는 이름으로 부드러운 육질과 선명한 마블링이 특징이다. 다케오 온천 역 레스토랑에서 판매하는 사가규 도시락은 2012년과 2013년 연속 규슈 에키벤 그랑프리에서 우승을 차지했을 정도로 유명하다. A5 등급의 소고기를 사용하여 부드러운 육질이 뛰어나고 절묘한 조림 상태의 스키야키 풍으로 양념하여 한국인 입맛에도 취향 저격.
5. 히토요시역의 ‘쿠리메시 에키벤’
1965년에 출시되어 50년 넘게 사랑받고 있는 이 도시락은 일본의 소박하고 검소함을 정석으로 보여준다. 무 말랭이를 넣은 찜 밥을 깔고 그 위에 산채나 조림 반찬에 영양가가 풍부한 밤을 얹었다. 밤을 주재료로 사용한 만큼 달달한 맛이 일품이고 한번 먹으면 잊을 수 없는 맛이다. 붉은 밤 모양의 도시락 케이스를 사용함으로써 먹는 재미를 더 했다.
6. 모리역의 ‘이카메시’
1940년에 탄생한 전통 에키벤으로 홋카이도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매우 유명하다. 2001년 대형 백화점에서 개최한 전국 에키벤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며 기록적인 판매량을 보이기도 했다. 생 오징어에 찹쌀을 채워 넣은 다음 간장과 오징어 먹물, 굵은 설탕을 넣은 육수로 진하게 조려냈다. 마주하는 첫 비주얼은 너무 심플하고 마치 오징어순대를 연상케 하지만 그 맛은 상상이상.
7. 나고야역의 ‘비쿠리미소카츠’
나고야 지역의 명물인 미소(된장)와 돈가스를 에키벤으로 표현했다. 나고야 장인이 만든 미소 소스와 왕돈가스를 연상케 하는 빅 사이즈의 검붉은색 돈가스는 압도적인 비주얼을 자랑한다. 나이프와 포크가 같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차창 밖 풍경을 즐기며 레스토랑 분위기를 내기에 제격이다.
8. 야츠시로역의 ‘아유야 산다이’
은어 삼대 도시락이라고 불리는 이 에키벤은 3대째 운영, 판매 중으로 역사가 깊다. 규슈 신칸센 부분 개발에 맞추어 1년에 걸쳐 개발한 에키벤으로 규슈 에키벤 랭킹 3연패를 기록하기도 했다. 일본 3대 급류 중 하나인 구미가와 강에서 올라온 은어를 사용해 특히 맛이 좋다. 구운 은어로 육수로 밥을 짓고 은어 조림을 얹어 눈과 입이 즐거운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다.
9. 아오모리역의 ‘가리비 솥밥’
아오모리 지역의 명물인 맛과 향이 풍부한 가리비가 주재료. 가리비는 설탕과 간장으로 적당히 조려서 본연의 맛을 잘 살리고 녹차로 지은 밥과 완벽하게 어우러지면서 부드러운 향이 입안을 감돈다. 사이드지만 계란 고명과 죽순조림은 가리비 솥밥의 완성도를 높여준다. 여기에 어란 간장 절임을 조금씩 먹으면 개운함을 느낄 수 있다.
10. 후쿠이역의 ‘예치젠 춘춘 카니메시’
후쿠이에서 가장 유명한 카니 메시(게 밥)이 도시락으로 탄생했다. 대게의 내장으로 간을 낸 국물로 밥을 짓고 삶은 대게가 아낌없이 듬뿍 올라가있다. 여기에 카니 미소(게 된장)으로 버무린 레몬 소스를 뿌려 먹는 맛이 일품. 아기자기하게 붉은 대게의 모양으로 도시락 케이스를 만들었다. 겨울에만 한정 판매되는 고급 에키벤이지만 그 인기가 대단하다.
원수연 press@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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